
말을 얻기 위해 수만 명의 군사를 사막 너머로 보낸 황제가 있었다. 중국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한 무제다. 그는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분지에서 자란 명마를 손에 넣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단행했다. 후대는 이 사건을 ‘천마전쟁’ 또는 ‘한·대완전쟁’이라고 부른다.
겉으로 보면 말 때문에 벌어진 황당한 전쟁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 마리의 말을 둘러싼 다툼이 아니라 군사력과 외교적 체면, 교역로의 주도권이 얽힌 제국 간 충돌이었다.
한 무제가 통치하던 기원전 2세기, 한나라는 북방의 유목 세력인 흉노와 치열하게 맞서고 있었다. 흉노 기병은 빠른 말과 뛰어난 궁술을 앞세워 한나라 국경을 위협했다.
농경사회였던 한나라는 병력과 물자가 많았지만 광활한 초원에서 흉노 기병을 추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강하고 지구력이 뛰어난 군마의 확보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였다.
서역을 다녀온 장건은 한 무제에게 대완국, 지금의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일대인 페르가나 분지에 뛰어난 말이 있다고 보고했다. 이 말들은 체격이 크고 속도와 지구력이 우수해 ‘천마’로 불렸다.
땀에 붉은빛이 섞여 나온다는 이유로 ‘한혈마’라는 이름도 붙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모습을 신비롭게 여겼지만, 붉은 땀은 피부의 기생충이나 상처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무제에게 천마는 단순한 애완용 명마가 아니었다. 흉노를 상대할 기병 전력을 강화하고, 서역 여러 나라에 한나라의 힘을 보여줄 전략자산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성능이 뛰어난 전투기나 첨단 무기를 확보하는 일과 비슷했다.
한나라는 대완국에 많은 황금과 황금으로 만든 말을 보내 천마를 구매하려 했다. 그러나 대완은 한나라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대군을 보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거래를 거절했다.
협상 과정에서 양측의 감정은 격해졌고, 한나라 사절은 황금 말을 부수며 모욕적인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귀국길에 오른 사절단은 대완 측의 공격을 받아 살해됐고 재물도 빼앗겼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 사건이 한 무제의 군사행동을 불러온 과정이 기록돼 있다.
한 무제는 이를 단순한 교역 실패가 아니라 제국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기원전 104년, 장군 이광리에게 군사를 맡겨 대완 원정을 명령했다. 그러나 첫 번째 원정은 참담했다. 한나라 군대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오아시스 도시들을 지나 수천㎞를 이동해야 했다. 서역의 여러 도시는 식량 제공을 거부했고 병사들은 전투보다 굶주림과 탈진으로 쓰러졌다. 원정군은 대완의 중심부에 제대로 도착하지도 못한 채 후퇴했다.
실패는 전쟁을 끝내지 못했다. 체면을 중시한 한 무제는 더 큰 병력과 수많은 말·소·낙타를 동원해 두 번째 원정을 준비했다. 기원전 102년 다시 출정한 한나라군은 대완의 주요 도시를 포위하고 물길을 차단했다. 궁지에 몰린 대완의 귀족들은 왕을 살해한 뒤 한나라에 항복했고, 명마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나라군은 가장 뛰어난 말 수십 마리와 번식용 말 수천 마리를 얻어 귀환했다. 전쟁의 목표는 달성됐지만 그 대가는 컸다. 먼 원정길에서 수많은 병사와 운송 동물이 목숨을 잃었고 막대한 국가 재정이 소모됐다. 천마를 얻은 승리 뒤에는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병사들의 희생이 쌓여 있었다. 전쟁은 기원전 104년부터 101년 무렵까지 이어진 것으로 정리된다.
그렇다면 천마전쟁은 정말 말 때문에 시작됐을까. 말은 분명 중요한 목표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흉노와의 군사 경쟁, 서역 교역로 확보, 살해된 외교사절에 대한 보복, 황제의 권위와 체면이 함께 작용했다. 작은 사건은 이미 쌓여 있던 갈등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었다.
역사에는 돼지 한 마리나 떠돌이 개, 나무 양동이 때문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전쟁의 원인을 동물이나 물건 하나로만 설명하면 권력과 영토, 경제적 이해관계라는 본질을 놓치기 쉽다. 사소한 사건이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전쟁할 준비가 된 사회가 사소한 사건을 명분으로 이용한 경우가 많다.
천마전쟁이 남긴 교훈도 여기에 있다. 국가가 안보와 자존심을 앞세워 대화를 중단하면 교역 갈등은 군사 충돌로 번질 수 있다. 지도자의 욕망과 체면을 국가의 이익으로 포장할 때 그 비용은 평범한 백성과 병사들이 떠안는다.
말은 죄가 없었다. 전쟁을 결정한 것은 천마가 아니라 그것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믿었던 인간의 욕망이었다. 역사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무엇 때문에 싸웠는가”를 넘어선다. “갈등을 전쟁으로 키운 사람은 누구이며, 그 대가는 누가 치렀는가”를 끝까지 살펴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