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옥의 『디카시와 철학』에서 하이데거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호출한다. 특히 알레테이아(Aletheia)는 디카시 창작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핵심 개념으로 배치한다. 디카시를 “존재가 디카시인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 포착한 예술”(65쪽)로 규정한다. 사진과 언어의 결합을 존재의 드러남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해석이라기보다, 철학적 어휘를 감각적 언술로 치환한 결과에 가깝다. 철학을 분석하지 않는다. 분위기로 대체한다.
하이데거에게 알레테이아는 결코 감각적 체험이나 주관적 계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자가 은폐에서 벗어나 드러나는 구조를 가리키는 존재론적 개념이다. 진리는 어떤 대상이 인간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아니다. 세계가 세계로서 열려 있는 방식이다. 하이데거는 진리를 “존재가 은폐에서 벗어나는 열림의 과정”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인간의 감정이나 직관의 결과로 환원하는 사고를 일관되게 경계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디카시와 철학』은 알레테이아를 “존재의 호출”(66쪽), “진리의 열림”(65쪽)으로 설명한다. 이 순간 알레테이아는 존재론에서 이탈한다. 정서적 사건으로 축소된다.
이 축소는 단순한 해석상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 구조를 해체하는 전도이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의지를 지닌 발화 주체로 설정하는 형이상학을 비판했다. 존재는 말하지 않는다. 드러날 뿐이다. 그런데 디카시 담론은 존재를 다시 말하는 존재자로 재구성한다. 시인은 그 음성을 수신하는 특권적 주체로 설정한다. 이 구조는 철학이 아닌 신학적 도식에 가깝다. 존재는 호출자가 되고, 시인은 선택된 청취자가 된다. 이러한 설정은 하이데거가 비판한 바로 그 형이상학적 사고를 반복한다.
문제는 사진에 대한 설명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상옥은 사진을 “존재의 첫 번째 흔적”(65쪽)이라 부른다. “언어 이전의 시각적 파토스”(65쪽)로 규정한다. 이 규정은 철학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성립하기 어렵다. 사진은 자연적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기술적 장치, 프레이밍, 선택과 배제, 매체 조건을 통과한 기호이다. 사진을 ‘언어 이전’으로 설정하는 순간, 이 담론은 기호학의 기본 전제를 스스로 폐기한다. 소쉬르 이후 기호는 결코 언어 이전의 자연적 잔여물일 수 없다. 바르트가 말한 푼크툼조차도 기호 체계 내부에서 작동하는 효과이다. 사진을 존재의 직접적 잔존물로 신비화하는 설명은 이론적 설명이 아닌 미학적 수사에 머문다.
사진에서 문자로, 다시 시로 이어진다는 단계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디카시와 철학』은 디카시를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의 결합을 통한 존재 진리의 열림”(64쪽)으로 설명한다. 이 결합이 어떻게 가능해지는지에 대한 이론적 매개를 제시하지 않는다. 사진 기호가 문자 기호로 전환되는 과정은 설명하지 않는다. 두 기호 체계가 어떻게 다른 작동 원리를 갖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다. 그 결과 남는 것은 감각에서 이미지로, 이미지에서 언어로 나아간다는 오래된 표현주의적 도식이다. 하이데거는 바로 이 사고를 주관적 표상 이론으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그런데 디카시 담론은 하이데거를 호출하면서, 그가 부정한 모델을 그대로 반복한다.
이 반복은 구조적 자기모순이다. 철학자의 이름은 빌려 왔지만, 그 철학이 겨냥했던 비판 대상은 그대로 유지한다. 알레테이아는 존재론적 구조가 아닌 창작 순간의 감각적 사건으로 재해석한다. 사진은 기호가 아닌 존재의 흔적으로 신비화한다. 시는 분석의 대상이 아닌 계시의 기록으로 격상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철학을 사유하지 않는다. 장식으로 활용한다.
결국, 디카시 존재론은 이론이 아닌 자기 암시에 가깝다. 알레테이아를 호출함으로써 창작 행위는 철학적으로 이질화한다. 사진은 기술적 산물이 아닌 존재의 증거로 삼는다. 시인을 표현자가 아닌 존재의 대변자로 설정한다. 이러한 설정은 비평의 대상일 수 없다. 이미 신성화하였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철학은 사유의 도구로서 기능을 상실한다. 미학적 확신을 강화하는 장치로 전락한다.
공개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철학의 적용이 아니다. 철학의 권위를 차용한 담론 전략이다. 알레테이아는 개념이 아닌 장식이다. 하이데거는 사상가가 아닌 브랜드이다. 이러한 방식이 반복한다면, 철학은 더 이상 비판의 언어일 수 없다. 감각적 자기 확신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소비할 뿐이다. 문제는 디카시라는 장르가 아니다. 철학을 사유하지 않은 채, 철학의 이름으로 창작을 면죄하는 이론적 태도 그 자체이다.
지금까지 하이데거의 알레테이아가 감각적 현현으로 오해하는 구조로 분석했다. 진리는 감각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폐와 비은폐의 운동 속에서 발생한다. 디카시 담론은 이 존재론적 긴장을 삭제한다. 그 결과 존재론은 감각 찬양으로 대체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